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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훈 작성일26-09-26 01:05 조회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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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231번째 영화는 다시 한번 영화 ‘인턴’입니다. 저와 함께 레터 보내드리는 백수진 기자가 230번째 레터로 ‘인턴’ 말씀드렸는데요, 꼭 덧붙여야겠다 싶은 부분이 있어 한 번 더 보내드립니다. 저는 한국판 ‘인턴’ 보고 놀랐거든요. 각색팀에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왜 이렇게까지 남자를 적(敵)으로 만드시는 건가요? 세대간 갈등과 화해가 아니라 남녀 갈등을 강조하려고 만든 영화인줄 알았습니다. 무슨 뜻인지 아래에서 말씀드려볼게요.
리메이크 영화 '인턴'에서 배우 최민식과 한소희는 할 수 있는 바 혹은 그 이상을 했다고 저는 봤어요. 문제는 연기가 아닙니다. 남자에게 모든 무능과 악의를 몰아준 각색,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했나요./워너브러더스코리아
우선 ‘인턴’ 박스오피스부터 보고가시겠습니다. 16일 수요일 개봉해서 ‘오디세이’를 2위로 밀어내고 1위로 데뷔했습니다. 성적이 호쾌하지는 않습니다. 18일 하루 관객 6만1142 명으로, 개봉 한 달이 넘은 ‘오디세이’의 5만5193 명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음주 수요일 23일에 추석 기대작 ‘암살자(들)’과 ‘타짜: 벨제붑의 노래’가 개봉하니 1위 수성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10년 전 미국 영화를 한국으로 옮겨온거라 예전 영화 느낌이 나서 매력을 못 느끼는 것일까요. 실제로 보시면 올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예요. 지금의 한국과 한국 사회를 보는 일부의 시각을 그대로 접하실 수 있거든요. 마치 ‘세상의 적은 남자다’, 말하는 것 같은.
한국판 ‘인턴’에 따르면 한국 사회, 한국 직장의 악당은 남자들입니다. 유능한 여성들의 반대편에 있는 남자들이 거짓말하고, 남자들이 뺏어가려 하고, 남자들이 가로챕니다. 은근하지도 않고 노골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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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인 미국판에 없었으나 한국으로 건너오면서 생긴 캐릭터, 한국판이 새로 만들어 넣은 캐릭터들이 그렇습니다. 부사장 영환(김준한)은 한국판의 대표 빌런입니다. 성공한 주인공 선우(한소희)를 몰아세우고, 너는 부족하니 CEO를 찾아와야 한다며 압박하는데, 영화에 악당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는 최근 추세를 반영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이 사람 한 명만 그렇다면요.
그런데 부사장만 그런게 아닙니다. 유능한 여성 직원의 공을 자신의 업적이라며 가로채는 팀장도 남성입니다. 혼자 힘으로 일본 회사와 협업을 성공시킨 여성 직원의 상사인데, 정말 밉상으로 그려집니다. 한소희(바로 이해하시기 쉽게 배우 이름으로 쓰겠습니다) 남편(강태오)도 한소희를 괴롭게만 합니다. 원작에서 남편은 유능한 아내 대신 육아까지 맡은 전업주부 역할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지치고 힘들어합니다. 그러다보니 하지 말아야할 일탈을 하게 되고요. 서로를 아끼지만 일 때문에 소원해지는 부부 관계를 쉽게 따라가게 만들었습니다. 한국판에서는 한소희도 남편도 가정을 지키는 면모는 없습니다. 남편은 작가이고 대학 강사인데 일에 몰두하는 아내를 이해하거나 포용할 아량은 없이 자신의 요구와 목표에만 충실한 인물로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관객이 그에게 공감할 여지가 없죠.
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한국판 ‘인턴’에서 남성, 그중에서도 꼰대 남성은 여성을 이해하지 못하며, 특히 유능하고 젊은 여성을 쉽게 평가절하합니다. 미국판에선 전업주부들이 워킹맘인 앤 해서웨이를 무시 내지는 질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때 로버트 드 니로가 끼어들어 앤 해서웨이를 방어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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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판에서는 같은 의미의 대사를 꼰대 남성들이 던지고 기호(최민식)가 나서서 방어해줍니다. 같은 성별이라도 역할이 달라 생길 수 있는 오해와 질시가 한국판에서는 성별 대 성별의 갈등이 됩니다. 성별 갈등으로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면, 위에 말씀드린 장면에서 여성을 한 명쯤 넣어줘도 됐을텐데요. 세상에는 나쁜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남의 공을 가로채는 사람들이 있지만, 남자들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요.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닌지요.
가정이 지워졌다는 .도 한국판의 차이。입니다. 원작의 여주인공은 엄마와 갈등을 빚습니다. 잘못 보낸 이메일을 지우느라 큰 소동이 일어나는 것도 엄마와 생긴 문제였지요. 한국판은 엄마를 지웠습니다. 그 자리에 회사 광고모델을 넣었는데, 그러다보니 무리한 장면이 나옵니다. 엄마와 딸 사이에 생길 문제를 엄연히 계약 관계인 회사 수장과 광고모델로 옮겨놓으니 그대로 성립하기 어렵지요. 통제불가능한 모녀간 애착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회사 대표가 광고모델에 매여 쩔쩔매고 조종당하는 걸로 치환해놓으니 설득력을 갖기 어렵습니다. 광고모델 휴대폰에서 문자 지우는 소동의 억지스러움은 넘어간다해도요.
엄마도 없지만 아이도 없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의 낮은 출산율을 생각하면 그럴 수 있죠. 문제는 엄마도 없고 아이도 없는 여주인공을 내세우다보니 엄마를 사랑하고 아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일도 사랑해서, 일과 가정 사이 갈등하고 균형을 지키려던 여주인공의 캐릭터성이 휘발됐다는 .입니다. 앤 해서웨이가 회사를 경영할 CEO를 영입하려던 것은 가정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판은 가정을 지워버리고 빌런 부사장의 강권에 의해 CEO를 영입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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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번민이나 고민이 아니라 남성에게 당하는 가스라이팅 때문에 흔들리는거죠. 이러다보니 여주인공의 주체성이 오히려 반감돼요. 이 영화가 묘사하는 그녀의 주체적 완성은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자유’를 찾는 것인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결국 지켜내는 원작의 선택이 제 눈엔 훨씬 주체적으로 보였네요.
영화 '인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원작이 10년 전 그렇게 히트한 것은 멋진 ‘어른’을 보여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판의 최민식은 어른의 면모보다는 나이든 남성으로 비칠 때가 많습니다. 원작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유쾌하고 유머도 있고 심지어 인턴으로 온 회사에서 새로운 사랑도 만납니다. 그런데 왜 한국판에선 이런 가능성에 온기를 주지 않은 걸까요. 로버트 드 니로와 데이트하는 회사의 마사지사(르네 루소) 역할이 한국판에선 카페 사장(김금순)으로 나오는데, 이러려면 왜 출연시켰는지 의아할 정도로 역할이 미미합니다. 김금순씨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를 캐스팅해놓고 이렇게 소모하고 말다니.
엔딩에서 보여주는 최민식의 모습도, 혹시나 보실 분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진 않겠습니다만, 지나치게 여지없고 매정한 묘사로 제게는 보였습니다. 그런 결론은 다큐로 내면 될텐데요. 기자 양반, 거긴 미국이고 여긴 한국아니오, 하실지 모르겠는데, 한국이어도 다 그런 거 아니고, 남자라고 다 그런 거 아니고, 반대로 여자라고 다 그렇지도 않은 게 아닐지요.
한국으로 건너와 많이 변한 ‘인턴’, 제게는 무척 아쉬웠습니다. 다음이나 다다음 레터에서는 추석 개봉 영화 모둠으로 준비해볼까 합니다. 하나로 쭉 보실 수 있게 한꺼번에 보내드릴게요. 그럼,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화는 세상의 창이고 호수이며 거울. 여러분을 그 곁으로 데려다 드립니다.
그 영화 어때 더 보기(https://www.chosun.com/tag/cinema-review/)
대간 갈등과 화해가